궁능소개

칠궁 소개·역사

칠궁 이미지
칠궁(七宮, 육상궁(毓祥宮))은 조선과 대한제국의 왕의 생모이지만
왕비가 되지 못한 일곱 후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이곳은 처음 1725년(영조 1)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사당을 조성하고 이름을 ‘숙빈묘(淑嬪廟)’라 하였다. 이후 1744년(영조 20) 이름을 ‘육상묘(毓祥廟)’라 하였다가 1753년(영조 29) 궁원제(宮園制, 왕을 낳은 후궁(사친)의 사당과 무덤을 궁과 원으로 높이는 제도)가 만들어지면서 지금의 ‘육상궁(毓祥宮)’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고종과 순종대에 한양 사대문 안에 각각 흩어져 있던 연호궁(延祜宮), 저경궁(儲慶宮), 대빈궁(大嬪宮), 선희궁(宣禧宮), 경우궁(景祐宮)이 육상궁 경내로 옮겨졌고, 마지막으로 1929년 덕안궁(德安宮)이 옮겨지면서 지금의 칠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곳은 일곱 후궁의 신주를 모셨지만, 사당의 건물은 총 다섯 개인데 육상궁과 연호궁, 선희궁과 경우궁은 각각 하나의 사당에 두 후궁의 신주를 모셨다. 그 밖에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齋室, 풍월헌, 송죽재, 삼락당)과 냉천정(冷泉亭) 등의 건물은 영조 대에 육상궁을 조성할 때 지은 건물이다.
칠궁 역사 테이블 - 연도, 내용으로 구성
연도 내용

1722년(경종 2)

희빈 장씨를 옥산부대빈으로 추봉하고 사당 조성(현 종로구 낙원동 종로세무서 부근)

1725년(영조 1)

현재의 자리에 숙빈 최씨의 사당 조성(숙빈묘)

1744년(영조 20)

숙빈묘를 육상묘로 바꿈

1753년(영조 29)

육상묘를 육상궁으로 승격

1755년(영조 31)

인빈묘(仁嬪廟)를 송현궁(현 중구 한국은행 부근)으로 옮기고 저경궁으로 승격

1764년(영조 40)

영빈 이씨가 세상을 떠난 후 사당 조성(현 종로구 서울맹학교 부근)

1765년(영조 41)

영빈 이씨에게 의열(義烈)이라는 칭호를 내림

1778년(정조 2)

정빈묘(靖嬪廟)를 연호궁으로 승격하고 사당을 옮김 (현 경복궁 북쪽 부근)

1788년(정조 12)

의열궁을 선희궁으로 바꿈

1824년(순조 24)

유빈 박씨가 세상을 떠난 후 경우궁 조성(현 종로구 계동 안국역 부근)

1870년(고종 7)

저경궁을 경우궁 경내로, 대빈궁과 선희궁을 육상궁 경내로 옮김

1882년(고종 19)

육상궁이 화재로 소실

1883년(고종 20)

육상궁 중건

1886년(고종 23)

경우궁을 현 종로구 옥인동으로 옮김

1887년(고종 24)

대빈궁을 원래의 자리로 다시 옮김

1897년(고종 34)

선희궁을 원래의 자리로 다시 옮김

1901년(광무 5)

유빈 박씨를 유비로 추봉

1908년(융희 2)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 경우궁을 육상궁 경내로 다시 옮김

1911년

황귀비 엄씨가 세상을 떠난 후 덕안궁 조성(현 덕수궁 경내)

1913년

덕안궁을 현 태평로1가로 옮김

1929년

덕안궁을 육상궁 경내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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