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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의 원래 명칭은 대안문(大安門)으로 1904년(광무 8) 경운궁 화재시 피해를 입지는 않았습니다.
경운궁 중건이 거의 마무리되는 1906년(광무 10) 4월 12일 대안문의 수리를 시역(始役)하고 그 명칭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쳤습니다. 이어 4월 24일에는 상량(上樑)을 하고 현판(懸板)을 걸었습니다.
‘대한(大漢)’은 한양이 창대해진다‘는 뜻입니다. <대한문상량문(大漢門上樑文)>을 보면 “황하가 맑아지는 천재일우의 시운을 맞았으므로 국운이 길이 창대할 것이고, 한양이 억만년 이어갈 터전에 자리하였으니 문 이름으로 특별히 건다.”고 나와 있습니다. 한양을 수도로 하여 새로 태어난 대한제국이 영원히 창대하라는 염원을 담은 말입니다.
태조 이성계에 의해 건국되었던 조선은 1897년 고종 황제에 의해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면서 오얏 이(李)자에서 따온 오얏꽃(토종 자두꽃)을 상징 문장으로 삼았으며, 이화문(李花文)이라 불렀습니다.
이화문은 다섯꽃잎의 꽃잎마다 셋의 꽃술을 놓고 꽃잎 사이에 또 꽃술을 하나씩 놓은 꼴로 정형화시켜 매우 깔끔하게 만들었습니다. 빛깔은 황제국을 상징하는 황금색으로 하였습니다. 대한제국 최고 훈장인 태극장 수상자 가운데 더 큰 공훈자 에게는 바로 이화문을 넣은 이화대훈장(李花大勳章)을 수여하여 최상의 영예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이화문은 황실의 상징으로 황실복과 창덕궁 인정전 용마루 등의 궁궐 건물 안팎장식, 도자기와 목기 등 각종 황실용품과 어차(御車)나 조명기구 나아가서는 석물 등을 비롯한 각종 기물 등에 두루 쓰여졌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궁중유물전시관에서는 1997년 [오얏꽃 황실생활유물] 특별전의 내용을 도록으로 발간한 바 있습니다.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앙부일구란
앙부일구는 조선시대에 사용한 해시계로 그림자가 비치는 면이 가마솥과 같은 반구형으로 되어있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동지에서 하지에 이르는 24절기를 13선의 위선으로 나타내어 절기를 알게 하였으며 수직으로 시각선을 그었고 영침은 북쪽을 향해 꽂았다. 특히 글을 모르는 백성을 위해 글자대신에 짐승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세종16년(1434)에 처음 만들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것은 17세기 후반에 제작한 것이다.
규격: 직경35.2cm, 높이:14cm (보물 제845호의 모조품)
보물로 지정되어 궁중유물전시관에 전시되던 앙부일구 작품은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있고 덕수궁의 석조전 앞에 있는 것은 모사품이다.
2. 해시계 보는 법
해시계 영침의 그림자가 가리키는 시간은 진태양시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표준시는 동경 135°를 기준으로 사용하는 평균태양시이므로 이 두 가지 시간의 차에서 발생하는 시차값을 시차보정표를 보고 진태양시에 더해주면 된다. 현재 표준시와 35분의 차이가 난다. 해시계는 우리나라의 전통 표준시를 사용했기 때문이고 현재 시계는 일본 표준시를 사용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시간차이다.
(예) 7월1일의 영침그림자(진태양시)가 12시를 가리키는 경우 : 시차보정표의 값이 35분이므로 현재시간(평균태양시)은 12시에 35분을 더한 12시 35분이 된다.